뭔가

재밌는 글이 읽고 싶다 ㅠ
...
얼마전부터 그때 좀 읽다 때려친 논문을
정독하고 있는데
이게 보통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관점이 머리속에서 정리되지 않고 흩어진다.
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뎅이를 의자에 딱 붙이고 집중해야할텐데
막히면 딴짓하고, 막히면 딴짓하고.
이게 뭔짓인가 싶다.
할일도 많은데, 왜이렇게 차근차근 진행이 안되는지 모르겠다.
슬퍼 ㅠ

천쓰허陈思和 , 중국당대문학사中国当代文学史 자료정리 1차 자료

천쓰허陈思和, 중국당대문학사中国当代文学史

 

1. 서론 : 중국당대문학의 원류, 분기와 발전개황

          

           천쓰허陈思和는 중국당대문학의 원류를 형성하는데 있어 큰 영향을 끼친 요소로 두 가지를 지적했는데, 바로 5.4 신문학운동五四新文学运动 1937년 항일전쟁抗日战争이다. 우선, 5.4신문학 전통은 그 주체인 지식인의 역할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국가권력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항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봉건의식에 물들어 있는 민간대중에 대해 계몽 교육과 정신적 비판의 태도를 취했다. (계몽주의를 특징으로 한 신문학 운동의 전통) 두 번째로 이러한 신문학 운동의 전통은 1937년 발발한 전쟁으로 인해 국가와 당파의 권력이 문학의 영역에 침투하면서 계몽주의로 단일화된 구조가 국가권력 이데올로기, 지식인의 현실전투정신, 대중의 민간문화 형태라는 세 가지 구도로 분열되었다.

           지역적 분포 면에서도 당시의 정치상황에 따라 공산당이 통치하는 해방구解放区의 문학-옌안延安, 국민당이 통치하는 국통구国统区의 문학-총칭, 함락구(윤함구陷区)의 식민지 문학-샹하이으로 나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당대문학사도 대륙, 홍콩과 마카오, 타이완문학의 지역적 구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1949년 이후 대륙 지역의 문학사만을 그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1949-1978

           1949 7월 제 1차 전국문학예술공작자대표대회全国文学艺术工作者代表大会(약칭 제1차 문대회)가 개최되어, 국통구와 해방구의 문예종사자가 만나 5.4신문학운동의 전투적 전통과 전쟁 중에 형성된 해방구 문화전통이 합쳐지는 기회가 되었다. 이는 옌안문예강화延安文艺讲话(1942)에서 이야기한 노농병劳农兵을 위한 문예 창작 (물론 문예창작의 주체도 노농병이 되어야 함)이 전국 문예활동의 방향으로 확립되는 계기가 된다.(해방구 문화전통에 5.4전투적역량 종속-종속관계분명)[1]

           [2]1966년에서 1976년까지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의 기간에 작가들의 공개적인 글쓰기는 거의 불가능하였고, 이는 문학사에 있어서도 큰 재난으로 작용되었다. 이 책에서는 이 기간 내에서의 작가들의 비공개적 글쓰기에 주목한다.

 

1978-1989

           중국의 개혁개방정책改革开放 1978 12월 중국공산당 제 11기 중앙위원회 제3회 전체회의-중공 11 3중전회-에서 결정되었다. 그리고 1979 10월 제4차 전국문학예술공작자대표회의[3]에서 덩샤오핑邓小平은 당이 문예사업을 지도함에 있어 무리하게 간섭하지 말라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1980년 중공중앙정치국은 기존의 문예의 노농병을 위한 봉사문예의 정치를 위한 봉사’ (연안문예강화시기의 구호)를 대체하여 문예의 인민을 위한 봉사, 사회주의를 위한 봉사라는 방침을 정식으로 제기 하였다. 이를 통해 (보다 자유로운 문학창작의 분위기) 5.4 신문학운동의 전통이 되살아 나기 시작하였다. [4]5.4 세대의 노작가들 (빠진巴金, 쑨리孙犁, )이 활동하는 것은 물론 50년대에 성장한 작가들-지청부터 심근문학寻根文学[5]까지-, ‘문학 자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입장의 재건을 지지하는 작가-문학주체성, 소설형식탐색, 모더니즘[6]기교에 관심, 몽롱시朦胧诗-[7]들이 새로 등장하였다.

 

90년대

           5.4시기 이래의 문학사는 대부분 시대적 공명共鸣의 상태에 처해져 있었고, (5.4: 반제반봉건, 개성해방,항전시기: 민족구국, 5.60년대: 계급투쟁,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시대주제), 90년대에 이르러서야 문학이 무명의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첫째, 주제, 방향이 없고, 공명이 없는 현상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 작가의 서사입장이 공동사회 이상에서 개인서사 입장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셋째, 시대적 공명의 소실로 인하여 자아와 대면하게 된 작가들이 개인의 심리적 공간을 개척하는 실험적 창작을 시도하게 되었다.   

 

 



[1]1장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에서 천쓰허는 당시를 구성한 작가들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첫째는 좌익 문학진영 출신으로 장기간 공산당과 함께 정치투쟁을 해온 진보적인 민주인사. (후펑), 둘째, 정치투쟁에서 유리된 대다수 지식인, (바진,라오셔老舍), 셋째, 역사상 직,간접적으로 공산당이나 좌익운동과 충돌하여 불쾌한 기억이 있거나, 혹은 충돌한 적은 없지만 계급이나 사회관계의 장벽 때문에 감정적으로 신정권과 맞지 않는 작가(션총원,부닝)

[2]서론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5장 새로운 사회모순의 탐색에서 다룬 문혁이 일어나기 전 1950년대에 일어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 1955년 후펑사건 (후펑 반혁명 집단 사건) 

(참고:http://baike.baidu.com/view/1035836.htm,

http://news.xinhuanet.com/banyt/2005-01/25/content_2505298.htm) 

둘째, 1956년 쌍백정책 (백화제방, 백가쟁명-“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의 범위 내에서 각종 학술사상이 정확한지 잘못된 것인지는 스스로 말하게 하고 그들을 간섭하지 마라”, “문학 예술 작업과 과학 연구에 독립적 사고의 자유와 변론의 자유, 창작과 비판의 자유,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자유, 자신의 의견을 견지하고 지킬 자유를 가지는 것이다.” 라고 지적, 이 방침의 실시 한계와 범위를 인민 내부의 자유라고 지적) 셋째, 1957년의 반우파투쟁이 있다. (p.245, 50년대 초 후스 파 문인에 대한 비판은 자유주의 전통 부정, 1955년 후펑 집단에 대한 비판은 30년대  좌익 문예 진영 내부에서 온  반대파를 문단에서 제거, 1957  반우파 운동은 50년대 성장한 지식인의 현실비판 권리를 박탈)  이러한 정치 운동 이후 지식인 사이의 5.4 신문학운동의 정신적 기반 급속히 위축 된다p.221. (반우파 투쟁과 대약진, 삼년간의 자연재해 p.236-“8장 시대에 대한 다층면적 사색에서 다루고 있음)

[3]참조 13장 문학 속의 인도주의 : 4차 문대회에서 작가들이 문예가 발전하려면 반드시 봉건적 독소를 청산해야 한다. “면서 인간이 목적이고, 인간이 중심하다라는 관점 제기, 인도주의 사조 (대표작 : 따이호우잉 <사람아 사람아>: 결말, 나는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지녀야 하며, 억압당하거나 길들여진 도구로 스스로 전락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커다란 문자가 갑자기 눈앞에 떠올랐다. ‘사람’! 오랫동안 버려진 채 잊혀져 왔던 노래가 내 목을 뚫고 나왔다. 인성, 사람의 정, 휴머니즘 ! “ p.335-337

[4]10 5.4 정신의 발현 에서, 신시기 문학의 발단으로 상흔문학伤痕文学을 꼽고 있다. P.299상흔문학은 문혁을 철저히 부정하고 현실 폭로, 비판할 것을 밝혔다. 더불어 지식인의 주체정신도 고양되어 있었다. 상흔문학의 명칭은 루신화卢新华의 단편소설 <상흔伤痕>에서 비롯된 것으로, 젊은 지청知青세대들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11장 문학 창작 중 역사에 대한 반성에서 다루고 있는 반사문학反思文学30년대에 출생하여 소년기에 중국 공산당의 영향을 받고, 일부는 공산당의 정권쟁탈 투쟁에 직접 참가하는 경력도 가지고 있는 혁명 경력의 소유자’ , 쌍백정책을 기반으로 문단에 패기 있게 등장 했다가 반우파 투쟁으로 좌절 경험, 천쓰허는 이들을 귀환자작가라 칭하며, 사회주의라는 역사적 조건 아래 5.4 세대 지식인의 현실 전투정신을 부활시켰다고 지적. 극좌노선에 대한 폭로 비판, 관료주의 반대. 사회 역사적 비극의 제시, 비극적 인물의 운명 해부, 비극적 인물 성격 창조의 특색을 지님. 고통 후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스토리의 정치적 배경과 줄거리 부각.p.299-303

[5]16장 뿌리찾기 문화의식의 실험에서 말하기를, 신시기 문학사에 있어 1985년은 중요한 해로서, 그 이전까지 작가들이 주로 역사에 대한 반성적 사색과 현실에 대판 비판의 측면을 표현하는데 치우쳐 있었다면, 1985년 문화뿌리찾기 의식의 대두로 계기로, 정치와 문화의 복합적인 관계속에서 직접적으로 문학적 실험을 촉발, 예술자체에 대한 작가와 예술가들의 자각적인 관심 불러 일으킴.p.395/ p. 373, 1980년대 계몽문학(계몽을 위한 문학)과 문학의 계몽(문학 자체에 대한 계몽)  

[6]개혁개방 이후에 서구 모더니즘문화와 문학사조가 소개, 60년전의 5.4 신문학운동 초기와 호응. (14장 문학창작 중 모더니즘 p.349)

[7]1978년 잡지 <오늘>의 창간, 자아의 영혼에서 출발, 상징, 은유, 통감 등 현대시가의 예술적 기교로 새로운 미학적 특징을 보이는 시가를 창작.p.352 / 몽타주, 은유, 풍자 등의 기법을 ㅗ지식인의 집단적인 경험에 개인화, 풍격화된 초점을 제공 p.353./ 모더니즘 문학논쟁 발생?, / 박정원, 중국당대문학과 외래영향, 세계문학과 중국당대문학의 대화 참고


2011년 마지막 날 (2011.12.31) 유학일기

1.
친구들과 어울려 북적이다 혼자남으니
좋기도 하고, 안좋기도 하고.
그래서 요며칠 혼자인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방안에만 있다가 운동하러만 잠깐씩 나가는 편인데
저녁시간에 적막이 가득찬 방안에 있자니
(난 소리 들리면 책을 못읽는 편)
나가야 할 것 같기도하고.
나가자니 술마시고 속 부대끼는 것도 싫고.
특히나 연말이라 여기저기서 나오라고 하기도 하지만
난 우다코의 각종 음식점과 술집에 가득찬 담배연기가 너무 싫기도.
(그래서 지금도 내 방에 나홀로 :) )

2.
이렇게 볼 것 없는 블로그에
가끔씩 사람들이 몰려올때가 있는데
그건 1박2일에도 나왔던, 인간극장에도 나왔던 앤드류가
티비에 한번씩 나올때다.
그 글을 지워버릴까 하기도 했는데
아니 대체 그 글을 읽으러 왜 내 블로그에 들어오는걸까.
내가 뭐라고 썼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그냥 인간극장 보고 쓴 간단한 글이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또 요 며칠 어딘가 나왔는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나느 또 한번 그 글을 지워버릴까 하고 있다는거.

3.
나는 무슨 날을 따지지는 않지만
또 무슨 날이 되면 뭔가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때로 한다는거.
올해의 마지막 날에 무엇을 해야할까.
우선 오전에는 스터디를 다녀와야하고.
점심 저녁 때는 한타임 정도는 빨래를 해 주어야 하나.
아, 그놈의 빨래. 난 정말 집안일 중에 빨래가 제일 싫다.
왜 싫으냐. 청소도 안하면 더러운걸 참으면 되고,
음식은 하기 싫으면 안먹으면 되는데
빨래는 아주 주기적으로, 해야만 하는 바로 그 시기가 다가오거든. ㅠ
빨래 바구니를 들고 세탁기에 타박타박타박 ( 사실은 타닥타닥타닥이 더 가깝다. 아주 재빠르기 때문)
내가 사는 방 반대편 복도의 끝으로
달려가서 빨랫감을 세탁기에 밀어넣고,
빨래가 되는 4,50분 동안( 이 시간도 사실은 무엇이 정확한지 잘 모르겠다)
무언가 초조한 마음으로,( 때가 되면 가지러 가야한다, 이런 마음)
기다리다가 가져와서 빨랫대에 널고 나면
어김없이
"아, 이렇게 개운한걸. 이제 미루지말고 제때제때 해야지 " 하는데
결국은 또 밀리고 ㅠㅠㅠㅠㅠㅠㅠ(이 어리석은 중생아)

4.
이러나 저러나 2011년의 마지막은 베이징에 있을 듯하고
1월 6일날 낮비행기로 한국 들어갈듯.
들어가면 이제까지와 같이 한 일주일 정도는 집에서 방콕할 듯하고,
이번 방학 때는 한국 학교 사람들과 콜로키움하기로해서
좀 바쁠 것 같다.  그래봤자 본래 친하던 몇명. 처음에는
언니가 좀 크게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결국 이제까지와 같이
대학원생들의 참된 비협조로 또 할놈만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더 낫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 후배들의 행태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바이다.
정말 꼰대같은 선배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후배님들의 협조로 난 더 나쁜 녀자, 과격한 녀자. 욕하는 녀자가 되어가고 있다.
어쨌든 이일로 며칠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시작했으니 보란듯이 성과가 있어야할테고, 
성과있음을 참여하는 후배들이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럴라면 내가 또 골빠지게 자료준비 및 정리 해주어야 하겠지. ㅠ )

5.
2011년의 마지막 날에도
일이삼사, 번호를 매겨가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마 나는 2012년에도 그렇겠지.
그래도 항상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낫다는 이야기가
사실!임을 증명해보이겠다~

다들, 해피뉴이어.

일상으로의 복귀 유학일기

이번학기는 유난히 손님들도 많이 찾아왔는데,
마지막 손님이 오늘 공항으로 가면서
나는 완벽하게, 까지는 아니고
-오늘 운동까지는 못갔다.
왠만치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박사논문주제때문에 큰 시름이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잡히지도 않고, 그러다보니 의욕도 없고 기타등등.
마지막 손님이 가기 일보직전 무언가 다가와서
아침부터 정신없이 자료 긁어모으기 한참.
다, 마지막 손님 덕분.

마지막 손님은 내 친한 같은 전공 후배님이었는데
아무래도 같은 전공이다 보니, 전공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그것과 관련한 베이징을 좀 같이 다니다보니,
생각치도 못하게 원래 내가 하던 지점으로 회귀.
어쨌든. 곧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

간만에. 유학일기

유학일기를 써 본다.
이번 학기는 유학생활이 무색하게
한국을 드나들었다.
우선 코스웍이 끝나기도 하였고,
한국에 있고 싶기도 하였고.
(기타등등, 본래 변명은 하자고 하면 어떻게든 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9일에 들어와서, 지금 20일이니까,
베이징 들어온지 열흘 정도 되었다.
우선은 들어오자마자 다음날
레베카 칼의 어택을 받았고,
급하게 영어의 홍수에 시달리며 자료를 읽고 있으며,
중간에 정선생님과 이어령 선생님이 학회를 여셔서,
간만에 정장입고, 뾰족구두 신어줬으며,
수희도 잠시 들어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
오늘은 주말을 맞아 성당도 다녀왔다.
베이징은 정말 칼바람이 들이치기 시작했다. 
진하와 너무 추워 발을 동동 구르며 성당에 갔다가,
오랜만에 유센터의 쌀국수를 먹었고. 
지금은 조용히 방에서 자료 읽는 중. 
(즐거운ㅡ_ㅡ) 영어 자료인 덕에
정독은 불가능하고, 
대충 뜻을 끼워맞추는 중인데
(외국어전공자의 신공)
맞게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 자료를 읽으면서도
팽개쳐 놓고 있는 다른 일들이
(번역과 콜로키움 스케줄짜기, 소논문 관련 등)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
어쨌든 베이징에서 두번째 일요일 완료 일보직전.
화이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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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드팩토리] 블루씨